김포의 시작을 알리는 마을 고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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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마루
기사입력 2021-07-05 [23:22]

고촌읍은 서울에서 김포로 들어오는 경계에서 바로 마주하게 되는 김포의 관문이자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동네이다. 서울과 바로 붙어있다 보니 개발의 물결이 가장 빨리 밀려 들어왔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정반대다. 수도권의 무분별한 개발과 확대 방지를 위한 그린벨트가 김포시내 유일하게 있는 곳이 고촌이다. 그래서 푸근한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대표적인 농촌 드라마인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고촌 신곡리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인구 4만 7000여 명. 향산(香山), 풍곡(楓谷), 신곡(新谷), 전호(錢湖), 태(台)리 등 다섯 개의 법정리가 있으며, 그린벨트 규제가 차츰 풀리면서 도시개발의 현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고촌읍을 다녀왔다.

 

글  이유경 시민기자, 편집실(K)

 

유년시절의 놀이터, 한강

그린벨트에 따른 각종 제약은 이곳 사람들의 삶을 답답하고 더디게 만들었지만 그로 인해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공기와 숲을 간직할 수 있었다. 이름난 산과 계곡은 없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울창한 숲이 만들어졌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천등고개만 들어서도 서울과는 사뭇 다른 공기와 기온을 느꼈다.

 

한강을 끼고 있어 물이 풍족한 덕분에 농사짓기 좋은 땅이 많아 인심 좋고 살림도 넉넉한 곳이다. 밭과 과수원도 많았고 양계와 축산업으로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강에 둑을 만들고 나서 큰 홍수는 없었지만 그 전에는 낮은 지역인 풍곡리 일대까지 물이 차올라 배를 댄다는 뜻의 ‘배대’, ‘배댕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한강은 아이들이 놀기 좋은 천연 놀이터였다. ‘한강에서 헤엄친다’는 말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몇십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길도 나지 않은 숲과 논밭을 헤치고 한강으로 헤엄치러 갔다. 한강 주변에는 땅이 축축해서 수박과 오이를 많이 심었는데 지금은 큰일 날 일이지만 물놀이로 허기진 배를 서리해온 수박 한 통으로 채우기도 했다. 그마저 넉넉하지 않으면 칡뿌리를 캐거나 무, 배추를 몰래 먹었다. 가끔 학교에서는 농사를 망친 농민들의 신고로 서리한 학생들을 색출(?)하기도 했다.

 

한강 주변과 모래섬, 그리고 전호리 평야에는 철을 따라 새가 날아들었다. 아이들은 새둥지에서 알을 몇 개 훔쳐 먹거나 주변 양계장을 하는 친구집에 알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부화기에서 나온 새는 청둥오리 같은 야생 조류도 있었다. 고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시민은 “지금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한강은 이 동네 아이들 놀이 문화의 중심에 있었다”라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신곡리에 있는 높이가 채 100m도 되지 않는 당산미도 추억의 장소다. 당산미 꼭대기에 올라가면 쓰지 않는 벙커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며 놀았다. 더불어 김포 3·1 만세운동의 큰 울림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촌 체육공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주변 정리를 마치고 지역 주민들에게 훌륭한 산책 공간이 되었다. 당산미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한강과 주변 일대는 고촌 사람들이 뽑는 최고의 장관이다.

 

 

천등고개는 국도 48호선을 타고 서울에서 김포, 강화 양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고개이다. 이 도로를 놓기 위해 산 중간을 깎았다. 원래는 현재 도로 옆에 있는 산 높이와 같았다고 한다. 비포장도로 시절, 이곳을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버스가 올라가지 못해 후진으로 경사진 길을 오르기도 했고 비라도 오면 승객들이 내려 버스를 밀었다. 1970년대에 아스팔트를 처음 깔았는데 당시 동네아이들이 구경을 나가기도 했다. 고촌에는 꽤 오랫동안 중·고등학교가 없어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이 고개를 넘어 김포중, 김포고로 통학을 하거나 더러 서울이나 인천으로 가야 했다.

 

천등고개의 유래와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산세가 험해 호랑이도 나오고 특히 쌀을 팔고 목돈을 들고 가는 이들을 노리는 도둑이 많아 천 명이 모여야 오를 수 있다고 해서 천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장릉으로 가기 위해 임금이 지나는 고개, 강화도령이었던 철종이 임금이 되기 위해 한양으로 오다 이 고개를 넘으며 “내가 임금이다”라고 외쳤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런 이야기들은 각색이 되어 <전설의 고향>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천등고개를 넘으면 장곡 버스정류장이 있었는데 가로등도 없던 시절 날이 어두워지면 플래시를 들고 늦게 귀가하는 가족을 마중 나가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고촌

서울과 가장 가깝지만 가장 발전이 더뎠던 고촌이 변하고 있다. 추석에 동네사람들이 모여 생활용품을 걸고 진행했던 ‘달맞이 노래자랑’이 열렸던 곳, 가까운 이웃들이 소소하게 모여 살던 작은 마을에도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그린벨트 구역이 해제되면서 공장도 생겼고, 초가집이 있던 공간에는 번듯한 전원주택이 세워지고 있다. 고촌역이 들어선 신곡사거리 주변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신곡리, 향산리 일대에 큰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고촌 인구도 늘어났다. 금란초, 고촌초 두 곳뿐이던 학교도 신곡초, 보름초, 향산초와 고촌중, 김포신곡중, 향산중이 개교한데 이어 고촌의 숙원사업이라 할 수 있는 고촌고까지 문을 열었다. 이외에도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위한 시설도 정비되고 있다.

 

고촌의 발전을 말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김포한강시네폴리스’다. 향산리 일대와 걸포동까지 이어지는 부지에 방송, 영상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콘텐츠 산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관련 시설(상업, 비즈니스, 컨벤션, 아카데미 등)을 제공하는 복합 문화도시 개발이 예정되어 있다. 꽤 오랜 시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시네폴리스는 고촌은 물론 김포를 대표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   1970년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김포의 경계 표시

 

올여름은 고촌에서…

경인아라뱃길과

김포아라마리나

 

김포의 관문 고촌 그리고 바로 서울과 경계인 곳에 경인아라뱃길과 김포아라마리나가 있다. 

 

총 길이 18km에 폭 80m의 경인아라뱃길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운하로 행주대교(서울) 근처 한강갑문에서 시작해 고촌 전호리와 인천 계양·서구를 지나 서해로 흘러간다. 전호리에는 김포터미널과 창고, 물류, 가공, 유통 시설이 마련됐다(170만 1000㎡ 규모). 그리고 이 뱃길을 따라 제방도로와 산책로, 공원 등 편의시설이 조성되어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곧게 뻗은 뱃길을 따라 자전거길이 완비되어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특히, 이 길을 따라 인천 계양, 검암, 청라지역을 지나면 총 633km 자전거 국토종주의 시작인 서해갑문인증센터가 나온다.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서쪽 해지는 노을을 보며 달리는 매력으로 많은 라이더의 성지로 꼽힌다. 여기와는 별도로 군사보호구역과 개발제한구역 등으로 보존된 향산리 철책길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길은 김포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매력적인 길이다. 

 

아라뱃길에 위치한 김포터미널에는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는 아라마리나가 있다. 이곳에서는 카약, 요트, 수상자전거 등의 수준 높은 체험과 함께 수상레저와 관련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체험 시설만이 아니라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가까이 대규모 쇼핑시설 및 숙박시설, 카페 등이 있어 김포시민뿐만 아니라 서울, 일산, 부천에서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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