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에 달이 차올랐다

금빛수로 라베니체 문보트 탑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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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마루
기사입력 2022-07-31 [10:18]

 

평일 오후 6시라지만 30℃를 웃도는 더위에다 습한 공기까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이었다. 에어컨 바람이나 쐬며 집에 누워있으면 좋으련만 네 살 난 딸아이는 엄마가 늘어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집 근처 한강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산책을 나온 시민들로 공원에는 평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익숙한 모습이다.

 

이곳으로 딸과 산책을 오곤 했다. 하늘 높이 솟아 오르는 분수를 감상하다 라베니체 쪽으로 슬렁슬렁 걷다 보면 수로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보트들이보인다. 그 중에서도 달을 닮은 문보트가 유독 눈에 띄었다. 저게 라베니체의 명물이라지. 천천히 흘러갈 뿐인데 재미있을까. 색안경을 썼더니 배에탄 사람들의 표정조차 밝게 느껴지지 않았다. 행인들의 구경거리가 된다는 점도 마뜩찮았다. 절대로 저 배를 탈 일은 없을 거야.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한강중앙공원 선착장에서 표를 끊고 있다니. 엄마가 된 이후의 삶은 이렇게 예측 범위를넘어선다.

 

“문보트 타실 분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엄마, 여기?”

“응. 노란 선 안에서 기다리래.”

꼬맹이가 배를 타보고 싶다고 졸라대는데 별 수 있나. 시뻘겋게 익은 얼굴로 구명조끼를 입고 입히고, 안내원의 주의사항을 듣고, 출렁거리는 부표에 발을 내딛을 수밖에. 그런데 회전목마도 못 타는 겁쟁이가 배를 잘 탈 수 있을는지 걱정이 됐다. 행여 울음이라도 터뜨려 배 값 2만 원을 날릴라 연신 딸에게 말을 건넸다.

“우와, 재미있겠다. 달님 배를 타고 강 위를 둥실둥실 떠갈 수 있어. 멋지다. 그치?”

억지로 끌어올린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놀이기구 타고 싶다고 해서 태워줬더니 내려달라고 난리를 쳤던 게 몇 번이던가. 하지만 꼬맹이는 예상과 달리 담담하게 배에 올랐다. 이런 종잡을 수없는 딸내미 같으니라고.

 

“가운데에 스틱 보이시죠? 스틱으로 방향 조종하시면 되고, 스틱 밑에 버튼 두 개는 전원입니다.

버튼 둘 다 올리시고 출발하세요.” 안내원이 설명한 대로 조작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그런데 심장이 왜 이렇게 쿵쾅대나. 딸이 겁이 많은 건 사실 엄마를 닮은 것이었다. 잔물결조차 하찮은 인공수로에서 뒤집힐 일 없는 보트를 타는 일일 뿐이지만 어미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눕듯이 자리에 기대앉아 병아리처럼 종알거렸다.

“엄마, 저기 분수로 가요. 물 만져 봐도 돼요?”

“아니. 아니야. 잠시만.”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만 스틱을 밀어댄 지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딸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떠따 떠따 비행기. 날아가, 날아가.”

하늘에서 비행기를 발견할 때면 어김없이 부르는 노래다. 서툰 발음에 가사는 제 멋대로. 풉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산책로에서 강을 바라볼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이렇게 평화로웠구나. 바람은 식은땀을 다정히 식혀주고 물빛은 부서지며 반짝였다. 이순간을 놓칠 수 없지.

 

“엄마가 처음엔 긴장됐는데 이제는 재미있네.

시작이 어렵더라도 뭐든 계속하다 보면 즐길 수 있는 거 같아. 너도….”

감상을 어떻게든 교훈으로 연결 지어 딸을 가르치려는 엄마의 말허리를 끊고 “멍멍아 안녕?” 딸은 산책하던 강아지에게 소리 높여 인사를 건넸다. 참 해맑다. 그래. 교훈이 다 무어야. 즐거우면 됐지.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딸이 올려다봤을 하늘을 마저 바라봤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근데요. 엄마, 달님은 어디 있어요?”

한참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딸이 물었다. 달님 배를 탄다고 설명해 줬었는데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음. 우리 배 옆모습이 달처럼 생겼는데 타고 있으니까 잘 모르겠지? 저기 봐봐.”

마침 우리 곁을 지나가던 문보트를 가리켜 보았다.

“어? 정말 예쁜 달님이네.”

보름달 같이 동그랗던 아이의 눈이 초승달처럼 부드럽게 휘었다. 그래. 아이야. 정말 예쁜 달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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