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나무 그늘에서 세월을 묻다 김포의 보호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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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마루
기사입력 2022-10-28 [21:36]

 깨우침을 주는 향나무

하성 가금리(산43-1)에는 여말선초 문인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박신(朴信 1362~1444)의 묘역이 있다. 묘역과 재실에 앞서 500년 수령의 향나무를 먼저 맞는다. 박신이 마음을 수양하고자 심었다고 전해지는 이 나무를 사람들은 ‘학목(學木)’이라고 부른다. ‘깨우침을 주는 나무’라는 뜻이다. 심성이 악하거나 어질지 못한 사람, 행동이 불미한 사람이 이곳에서 공부하면 어질고 착한 사람으로 거듭나 배움에만 전념하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학목’처럼 특별한 이름을 부여받은 보호수는 흔치않다. 박신은 세종 때 통진에 13년 동안 유배되었는데, 월곶과 강화 갑곶진 사이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내리기 위해 물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사재를 털어 갑곶나루석축로(성동리)를 만들었다.

 

충신의 넋을 보듬는 은행나무

하성면 석탄리(산 101-2)에 있는 은행나무는 김포의 보호수 중 최고령이다. 무려 620년의 세월,석탄리 사람들은 고려시대 할아버지 때부터 보아온 나무를 수 대에 걸쳐 지금도 마주하고 있다. 숫나무로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맞은편 마을 마조리 은행나무(산 13)와 부부관계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 나무는 고려 공민왕 때 대제학까지 지낸 문신 민유(閔愉)가 신돈의 난을 피해 이곳 하성에 내려와 정착한 후 심은 나무다. 민유는 이 은행나무를 심고 깃발을 꽂아둔 채 친구들을 청해 술을나누며 학문을 논했다. 늘 나라를 걱정하여 한양이 내려다보이는 국사봉(봉성산)에 올라 나랏일을 생각하며 울적해 했다고 한다. 충신의 넋을 달래기라도 하듯 은행나무는 유택을 보듬으며 묵묵히 세월을 이겨내고 있다.

 

나무가 들려주는 마을의 역사

옛 통진현 관아 주변엔 유독 보호수가 많다. 1127년 고려 인종 5년에 창건된 통진향교 주변으로 290~440년의 수령을 가진 느티나무 세 그루가터줏대감 행세를 하고 있다. 향교를 시작으로 3.1만세운동을 기념하여 이름 붙여진 ‘군하리 만세로’를 걷다 보면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한 보호수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일제시대 주재소로 쓰였던 통진이청의 느티나무는 아픔을 간직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월곶초등학교 내에 도깨비 이야기가 내려오는 수령 510년의 느티나무가 있다. 옛통진관아 자리에 위치한 월곶생활문화센터 내에는 수령 420년의 회화나무가 군하리 저잣거리에서 3.1만세운동을 이끈 이경덕 지사의 넋을 기억하고 있다. 센터 옆으로 조성된 군하숲길 초입에는 450년된 느티나무가 오솔길로 안내한다.

 

내 마음 맡길, 김포의 보호수

김포에는 총 64주 보호수가 지정되어 있다. 총9종류로 느티나무 33주, 은행나무 13주, 향나무9주, 회화나무 3주 기타 6주로 들메나무 1주, 상술피나무 2주, 음나무 1주, 갈참나무 1주, 물푸레나무 1주 등이다. 김포시는 40년 전인 1982년 처음 보호수를 지정하기 시작했다. 제1호 보호수는 북변동 361-19번지(구 경찰서)에 있는 수령 540년 은행나무다. 장기동에는 아낙네들이 빨래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게 심은 290살의 향나무가 보호받고 있고, 하성면 마곡리에는 비가 오면 우는 회화나무가 있어 가뭄에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진입로 근처엔 유난히 단풍이 고운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수령 450년으로 주민들이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던 당산나무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나무들은 마을의 정령으로 악귀와 재난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주민들의 염원도 들어주었다. 옛 의미는 많이 희석됐지만, 지금도 크고 오래된 나무는 여행자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심적 여유를 제공한다. 길을 가다 옛 나무를 만나면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속내를 털어내 보자. 말 많은 사람보다, 말없이 그늘이 되어주는 나무로부터 때론 더 큰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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